1월 9일 월요일 롯데시네마 라페스타점에서
뮤지컬 영화 <영웅>을 보고 왔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다룬 <영웅>은
뮤지컬로도 유명한 작품을 영화화한 건데요.
2009년 초연을 시작으로 올해 9연을 올리고,
브로드웨이와 하얼빈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는
우리나라 대표 창작 뮤지컬입니다.
뮤지컬로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못 봤는데
영화로는 꼭 봐야겠다 해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뮤지컬 영화들은 음향 효과가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무조건 영화관에서 봐야 하니까요.
역사책에서 안중근 의사가 걸어 나온 것 같은
아주 높은 싱크로율로 뮤지컬에
거의 매번 캐스팅되는 정성화 배우가
영화에서도 안중근 의사로 나옵니다.
영화관 벽에 붙어있는
<영웅> 포스터 앞에 설 때면
마치 실제 안중근 의사를 마주하듯
자세를 고쳐잡게 되더라고요.
단순히 보이는 외모뿐만 아니라
결연한 눈빛, 다부진 의지가 묻어난 입매까지
모든 걸 담아낸 것 같았습니다.
제가 뮤지컬을 봤더라면
뮤지컬과 비교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아쉽지만....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래부터 스포 있습니다.
스포를 피하고 싶다면 영화를 보고 오세요!
(하지만 역사가 이미 스포인걸...?)
영화는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약지 손가락을 끊어내고 혈서를 쓰며 부르는
'단지 동맹'이라는 넘버로 시작됩니다.
영화만 봤는데도 이 장면에서
뮤지컬도 딱 이렇게 시작하겠구나 생각했어요.
하이얀 눈밭에 번져가는 검붉은 선혈...
안 의사의 삶을 한 컷으로 요약한 장면이죠?
저는 이 장면에서 색의 대비 때문인지
일장기, 욱일기가 떠올랐는데요.
그 위에서 천에 우리 의병군의 피로 그린
'대한 독립'과 태극무늬가
감독이 의도한 상징 같았어요.
시작부터 관객들을 확 몰입시키는
위압감이 대단한 씬이라 누가 감독이 되든
이 장면을 도입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그 시각...
이토는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역사에는 없는 '설희'라는 가상의 인물이
그 옆을 지키는데요.
명성황후의 죽음을 곁에서 목도한 궁녀인
설희는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샤가 되었고,
이토의 눈에 들어 내부의 기밀 정보를 빼내는
대한 의병군의 스파이로 활약합니다.
설희라는 역할은 김고은 배우가 맡았는데,
최근 김고은 배우가 부르는 넘버
'당신을 기억합니다.'가 SNS에 짤로
많이 돌아다녀서 엄청 핫했거든요.
그래서 이미 여러 번 본 장면인데도
영화관에서 보니까 코끝이 움찔했습니다.
역시 음향은 영화관!!!!
워낙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지만
비주얼도 궁녀, 게이샤 모두에 다 잘 어울렸고
시시각각 변하는 미묘한 표정 연기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참 좋더라고요.
스틸컷만 봐도 지나치게 예쁨....
다만 이 역할을
'원작의 뮤지컬 배우가 하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남기는 했는데요.
정성화 배우, 몇몇 앙상블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주조연급을 뮤지컬 배우들로
캐스팅하지 않았더라고요.
반반 정도 섞었다면 어땠을까,
뮤지컬 영화의 맛을 더 잘 살리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말하듯 노래하는 그 느낌 아시죠?
그 느낌이 조금 약했다....ㅎㅎㅎㅎ
배우 캐스팅에는 아쉬움이 없습니다!
모두 역할을 찰떡같이 잘 소화하셨어요.
특히 박진주 배우가 뮤지컬 느낌을
제일 잘 살려주신 배우인 듯 합니다.
(이 언니 노래에는 뭔가 있어....)
하얼빈에서 상봉한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
하얼빈에서 숨어지내면서도 일본 순사들에게
쫓기고 시달리는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요.
일본 순사들은 안중근을 집요하게 찾고,
그 과정에서 동지들을 하나둘 잃게 됩니다.
그렇게 다가올 때를 기다리며
안중근 일행은 거사를 계획해 나갑니다.
이후 이토의 하얼빈행이 결정 나고
하얼빈역에서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탄을 박으며
여러 번 "코레아 우라"를 외칩니다.
한국사 공부를 할 때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이 거사의 장면을 영상으로 보니까
결과를 알면서도 두 손을 모으게 되더라고요.
안중근 의사의 말씀처럼
대한의 독립, 동아시아의 평화,
일본의 잔혹한 제국주의 저지...
이런 대의.... 물론 다 중요하지만..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인 어머니와
해준 것도 없는 조국에 몸 바친 남편을 둔 아내
이런 작은 행복도 소중한 거잖아요.
영화로 보는 저도 거사의 순간에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당사자는 어땠을까 싶어서
그 큰 뜻을 감히 다 헤아리지 못하겠다,
대의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쫄보 소시민인 것 같아요..)
이후 감옥에서의 삶은...
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롯데시네마 라페스타점은
모든 관이 리클라이너 의자로
되어있는 영화관인데요. (넘죠아..)
의자를 편안히 다 젖히고 누워서 보고 있다가
이후부터는 감사하고 죄송스러워
차마 누워서 볼 수 없어 의자를 세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기 전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재판 장면인데요.
뮤지컬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아주 유명한 넘버, '누가 죄인인가' 때문입니다.
사실 이걸 보러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 이유는 바로 (둥둥둥둥)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영웅> 누가 죄인인가
가사만 봐도 음성 지원이 되는 그 넘버죠?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으로서
그가 짚어내는 거사의 15가지 당위성이
머리와 가슴에 날아들어 콕콕 박힙니다.
앙상블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라
사운드의 압도감도 상당하죠.
기대를 정말 많이 했음에도
실망시키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뮤지컬로 본다면
더 대단할 것 같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뤼순 형무소에서의 수감 생활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는
안 의사의 성품에 감화된 일본 교도관,
조마리아 여사의 수의와 편지일 텐데요.
두 가지 일화 모두 아주 잘 표현되어
자칫 거사 이후 스토리상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 후반부를 잘 지탱해가는 두 축이 됩니다.
오히려 거사 그 자체보다 큰 감동을 선사하며
안중근이 왜 테러리스트가 아닌지,
그가 대한제국의 장군으로
정당하게 어떤 일을 한 건지를
명백히 보여줍니다.
사형을 앞둔 안중근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는 치바 교도관...
(저는 이 장면이 그렇게 슬펐어요.
지금이라면 좋은 친구가 됐을 두 사람이
가혹한 시대 앞에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게.. )
그는 마지막으로 동양의 평화가 무어냐 묻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 넘버 '동양평화'는
현대의 우리에게 숙제를 남기는 듯합니다.
단순한 복수의 감정으로
반일, 혐일 운동을 해서는 안 되며
더 큰 차원의 평화를 염원했던
독립투사들의 뜻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대한의 독립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동양의 평화까지 꿈꿨던
안중근 의사의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의는 품지 못해도..
그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우리.
또한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하신 나문희 배우의
절절한 넘버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와
아들에게 남긴 손수 지은 수의와 편지는.....
긴 말 않습니다... 보세요.
눈물 콧물 다 뺐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에게
"목숨을 구걸 말고 당당하게 죽어라."
"너의 죽음은 네 개인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저는 이번 생에 감히 다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사형장에서 부른 마지막 넘버, '장부가'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으려 노력했던 한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도 두려웠구나...
큰 뜻을 품고 괴로웠구나...
한 인간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마지막 장면이다 보니
영화에서는 빛을 이용해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는데요.
넘버 자체가 가진 스토리가
이미 충분히 크기 때문에
화려한 포장 없이 조금 더 소박하게
연출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화면 효과가 넘버를 잡아먹을 뻔 했다..
상업 영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후기를 쓰는 지금도
장면과 넘버들을 떠올리면 울컥합니다.
국내 고유의 창작 뮤지컬로서
10년 넘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스토리의 힘이겠죠.
영화를 보고 나니 더더욱!!
뮤지컬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작진은 아마도 이걸 노렸으리라...
원래 아는 맛이 더 무섭잖아요.
뮤지컬 보시기 전에
영화를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만으로도 주는 감동이 아주 크니까요.
난 뮤덕이 아니라 망설여진다 하시는 분들.
내가 왜 망설였나 싶으실 거예요.
영화관에서 재밌게 보고 오세요!!
시대에 묻습니다,
과연 누가 죄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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