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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2023년 2월 독서(4) NO TIME TO DIE : 완도살롱 폐업기

by 율라리스 2023. 3. 4.

나에겐 땅 끝에 존재하는 나만의 도피처가 있다.
사실 방문한 횟수는 꼴랑 2회밖에 안 되지만...
현실에서의 삶이 조금은 갑갑하게 느껴질 때
떠오르는 곳이 있다면
도피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작년 7월 말, 2박 3일 동안 혼자서
전라남도의 5개 산을 여행하고 왔다.
1일 1산 장흥 천관산,
2일 1산 해남 달마산, 2산 해남 두륜산
3일 1산 강진 덕룡산, 2산 영암 월출산

하루에 약 10-18km 가량 등산을 하는
이 빡센 일정 중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밤에 혼자 바에서 마시는 칵테일이었다.

전남 바닷가 쪽의 펍이나 바를 검색하다가
장흥에서 해남으로 넘어가는 길..
완도에 존재하는 바를 발견하게 된다.

<완도살롱>
'서점'이라고도 되어있고 '바'라고도 하는데
분홍? 보라? 묘하게 섞인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게 사진을 보면서 호기심이 일어
첫날 저녁을 완도에서 묵게 되었다.
(정작 완도는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이것이 2회차 방문할 땐 좋은 핑계거리였다.)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에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완도의 가게들 틈에서
완도살롱은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네가 찾던 그곳이 바로 여기야!’
라며 말을 거는 듯했다.

큰 키에 올백머리, 인텔리한 안경을 쓴
하늘색 셔츠의 사장님은
삐걱거리는 미닫이문을 수줍게 여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내가 뭐 어떻게 알고 와야 하는 곳인가...’
싶어서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ㅎㅎㅎ
혼자 여행 중에
칵테일 한잔하러 왔다는 얘기를 꺼내자
바의 한자리를 안내해 주셨다.

젊은 사장님이라 (나랑 또래) 좀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완도 셀럽이셔서 더 놀랐지만..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가 있었다!)
또 작가로 책을 몇 권 내셨다 하여
그것도 매우 관심을 끄는 부분이었다.

그날 밤은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하루 밤이었지만
완도에 지인이 생겼다 할 수 있을 만큼
아는 사람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날의 대화는
인생에서 손꼽는 흥미로운 대화였다.
(사장님 엔프피이심ㅋㅋㅋㅋㅋㅋㅋ
누구나 가도 누구나 받아주심ㅋㅋㅋ)

원래 경기도 여주 사람인 사장님이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완도까지 내려와
독립서점 겸 바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현재 우리의 삶이 대화의 주제였는데..
그때 이 책을 쓰신다고 말씀하셨었다.

원래는 완도살롱 창업기를 연재 중이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견뎌내면서
결국은 종착지가 폐업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결국 무너지고 흩어지는 방향으로...
그래서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이곳을 운영하면서
창업기가 아닌 폐업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물론 2024년까지 계약 연장하여
완도살롱은 여전히 무사하다.

그리고 나는 완도 여행을 안 해봤다는 이유와
완도살롱 폐업기를 사러 간다는 이유를 들어
2023년 2월 또 한 번 완도를 방문했다.

완도살롱의 폐업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폐업하면 어떨까?’ 하는 불손하고 불투명한 아이디어만 부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이렇듯 잔인하게 배수의 진을 치는 이유는 4년 차에도 계속 창업기를 연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과 이 시국(코로나 팬데믹)에는 이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완도살롱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모종의 협박이며 조용한 노이즈 마케팅입니다.
한쪽에는 선명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완도살롱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각오로 문을 열 거라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스피노자식 영업이라고나 할까요?
NO TIME TO DIE : 완도살롱 폐업기 17쪽


이것이 협박이라면 성공적인 듯...
나는 그곳의 폐업을 막으려 달려들 테니까.


사장님이 처음에 완도에 내려왔을 때 상황이
내가 등산을 시작하게 됐던 계기와 많이 비슷해서
첫 만남에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 일화에
굉장히 감정 이입을 하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수도권이 아닌 어딘가로
불쑥 떠나버리고픈 마음도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100대 명산을 핑계로 전국으로 등산을 다니며
살만한 곳을 찾는 중이기도 했다.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침몰 직전의 난파선 같은 모습이었다. 바닥을 드러낸 잔고, 불확실한 미래,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가볍지도 않았던 우울까지. 그런 나에게 섬은 도피처이자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NO TIME TO DIE : 완도살롱 폐업기 7쪽


사장님은 처음엔 언제 떠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완도에서의 삶을 시작하셨는데
완도 주민들에게서 받는 마음들로 인해
이제는 책임감을 느끼신다고 하셨다.

이별이 익숙한 섬, 완도.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쓰신 부분이
내 마음을 잡는다.

5만 명이 살아가는 완도에서 천만 인구의 도시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우연과 인연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사람이 귀한 곳에 머물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무엇하나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곳이니까요. 더 소중하기에 간절하고, 간절하기에 원하게 됩니다.
NO TIME TO DIE : 완도살롱 폐업기 171쪽


완도군에는 차로 이동할 수 있는
약산도, 고금도, 신지도,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청산도, 보길도, 소안도, 노화도,
생일도, 평일도, 금당도..
많은 예쁜 섬들이 있다.
나도 하나씩 방문하겠지...?

기본 정식에서 밑반찬으로 전복이 나오고,
그냥 김에 맨밥만 싸먹어도 맛있는 곳.
아마도 머지않아 나는 또 완도를 찾을 것 같다.


완도살롱 인스타그램